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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애도하는 직업: 장례식 울음꾼의 모든 것

by 캐슬리언 2025. 2. 25.

장례식

 

장례식 울음꾼은 고대부터 존재했던 직업으로, 장례식에서 슬픔을 표현하며 고인을 기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권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현대에는 장례 문화의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장례식 울음꾼의 기원과 역사, 울음꾼이 필요했던 이유와 애환과 그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1. 장례식 울음꾼의 기원과 역사

 

장례식 울음꾼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중국, 로마 제국 등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유족을 대신해 큰 소리로 울거나 애도 노래를 부르며 장례식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장례식 통곡자는 단순한 역할 이상의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데, 신에게 간청하고 죽은 자가 저승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통곡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또한 로마 시대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장례식에 애도객이 많을수록 그 사람이 삶에서 더 중요한 존재였다고 여겼습니다. 로마 귀족들은 장례식을 더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더 많은 울음꾼을 고용하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이 직업은 중국과 동아시아에서도 흔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곡비'라고 불리며 장례식에서 큰 소리로 울고 노래하며 유족을 대신해 슬픔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심지어 상주가 울지 못하면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울음꾼은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신분, 문화, 장례 의식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2. 슬픔을 대신하는 이유, 사회적 환경과 역할

 

장례식 애도자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죽음을 애도하는 문화적 전통이 강했던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족이 실제로 슬픔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이를 대신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장례식에서 직접적인 감정 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죽음을 맞이한 유족들은 큰 소리로 곡을 불러야 했고, 이를 통해 고인의 영혼이 저승으로 무사히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특히 상류층에서는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 때문에 감정을 직접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장례식 울음꾼은 유족을 대신해 감정을 표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또한 슬픔의 정도가 고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표시라고 믿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울음꾼을 고용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부유한 집안일수록 장례식에 더 많은 울음꾼을 대동하여 장례식을 성대하게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우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노래나 전통적인 곡조를 사용하여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애가(哀歌)를 부르며 장례식의 분위기를 더울 비통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3. 장례 문화의 변화와 직업의 소멸

 

20세기 이후,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장례식 울음꾼의 필요성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 장례 문화의 변화

현대에 들어와서는 공개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전통적인 장례식에서는 노래와 통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점점 더 조용하고 차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서양에서는 엄숙한 추모식이 일반화되었고, 동양에서는 현대식 장례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울음꾼의 역할이 줄어들었습니다.

 

2) 기술의 발전과 의식의 간소화

과거 장례식은 며칠에 걸쳐 진행되는 큰 행사였지만, 현대에는 화장(火葬)이 보편화되면서 절차가 간소화되었고 온라인 추모 공간과 영상 추모의 증가로 장례식의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기리는 것을 선호하면서 울음꾼을 고용하는 것은 점차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3) 사회적 인식의 변화

오늘날에는 감정을 지나치게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인위적으로 슬픔을 연출하는 장례식 울음꾼의 역할은 선호도가 떨어졌습니다. 대신 조용히 고인을 기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4. 장례식 통곡자의 애환과 남겨진 의미

 

장례식 통곡자는 단순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과 애도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통곡자의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데도 강제로 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장례식 분위기에 맞게 슬픈 척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러 장례식에서 반복적으로 울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슬픔을 표현할 수 없는 유족을 대신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오늘날 장례식 울음꾼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들이 담당했던 역할은 여전히 현대 장례 문화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은 변했지만, 고인을 기리고 기억하는 본질적인 의미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결론: 변화 속에서도 남은 기억

 

장례식 울음꾼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에서 죽음과 애도를 다루는 방식을 반영하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장례 문화가 변화하고 현대적인 애도 방식이 등장하면서 울음꾼의 역할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례식 울음꾼의 역할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죽음을 기리고 슬픔을 나누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 울음꾼이 사라지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애도하는 방식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